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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배추가 좋아!

퐁당 에디터

양배추를 갈아먹을 때 특유의 비린내를 감춰주는 특별한 재료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유자청! 양배추를 가위로 마구 자르고 유자청을 듬뿍 넣어 블렌더로 한참을 갈아주니 맛있는 양배추 스무디가 되었다! 그냥 양배추즙이나 양배추만 갈았을 때 보다 훨씬 마시기 편안했다. 지금 두 잔째 마시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속이 너무 편안해서 커피 생각도 나고 맵게 볶은 제육볶음도 생각이 난다. 확실히 양배추는 위장 장애에 특효를 보이나보다. 이렇게 한참 양배추 갈아 마시기에 대해 예찬한 이유는 사실 지금 4일째 고열과 두통을 앓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나는 시인으로 등단을 준비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본격적으로 쓰고 투고하고 했던 과정만 포함하더라도 거짓말 보태면 10년 정도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러니까 거의 나의 20대는 등단이라는 제도 안에 포함되어 시인 자격증 같은 것을 부여받기 위한 노력을 위해 쓰였다. 정말 지난했고 최종심에 올랐다 떨어지는 경험들이 덧쌓이며 자괴감과 우울감에 빠져들었다. 그러니 등단만 하고 나면 세상이 굉장히 달라질 것이라는 환상이 두터워졌을 수밖에. 환상. 정말 환상이었다. 신인상 수상 전화를 받고 수상 소감을 쓰고 상패를 받기까지는 계속 꿈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가족들과 나의 소중한 지인들 모두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었고 나 또한 10년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는데 등단과 내 삶의 드라마틱한 변화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었다. 어쩐지... 대학 시절 은사님께서 진로에 대해 주기적으로 꼬치꼬치 물으시고 내가 변화 없이 시인이며 직업 작가다, 라고 할 때마다 얼굴빛이 어두워지셨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학교 안에서의 스승일 뿐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도 선배인 그는 나의 장래희망이 얼마나 ‘희망’에 지나지 않는지를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은사님의 걱정으로 시작했던 대학원 공부였는데 어쩌다 보니 박사 과정까지 진학하게 되었고 나는 지금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인정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조금 게으른 편이다. 최근에는 부지런해지겠다는 마음으로 일어나는 시간과 잠드는 시간, 일상 등을 계획하고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는데 이 노력이 조금 과했는지 위궤양이라는 병을 얻게 되었다. 누군가 명치 안쪽을 콕 콕 찌르는 듯한 기분이 들고 시큼하달까, 쓰리달까 꽤나 불쾌한 느낌이 드는 질환이다. 특히 먹는 것에 진심인 내가 음식을 가려야 한다는 점이 제일 화가 나는 질병이다. 특유의 낙천성과 게으름이 합쳐져 나는 어느새 등단한 지 그리고 박사를 수료한지 5년차를 지나고 있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스퍼트를 내는 타입이기도 하지만 밀려드는 초조함에 얼마 전 집 근처 스터디 카페 한 달 권을 끊었다.


나름 열심히 시간이 날 때마다 가서 공부를 했는데 아프기 전날 유난히 공부가 잘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책도 잘 읽히고 심지어 글도 잘 써졌다. 오호 드디어 싶었다. 박사 논문은 엉덩이 싸움이라는 이야기를 주구장창 들어 왔는데 드디어 내게도 그 순간이 왔구나 싶어서 배가 많이 고파 손이 떨려오기 시작했지만 공부를 지속했다. 스터디 카페가 좋은 점은 일단 에어컨이 진짜 빵빵하다는 점이다. 집에 가면 덥고 고양이들이 괴롭히기나 하는데 공부 잘 될 때 더 해야지! 했던 것이... 병이 되고 말았다.


사망 플래그라고 하던가. 공부를 끝내고 나와 차로 걸어가는데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땅이 흔들리고 공기가 많이 뜨겁게 느껴졌다. 어떻게 운전을 해서 집에 왔는데 나는 배가 많이 고픈데 나의 배우자는 별로 배고프지 않아해 화가 조금 났었다. 결혼해서 가장 불편한 점은 서로의 배꼽시계가 시간이 맞지 않을 때 같다고 잠시 생각하며 그럼 나 혼자 먹겠다, 를 선언했다. 요거트와 삶은 달걀 그리고 씨리얼을 먹었는데 그때부터 두통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스터디 카페가 워낙 시원했었기에 집이 유난히 덥게 느껴졌는데 그냥 온도 차로 발생한 더위라는 생각을 하며 진통제를 두 알 먹고 잤다. 내일도 열심히 해보자! 오늘 정말 열심히 공부했지, 하고 뿌듯해 했는데......

다음 날 아침부터 두통과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진통제도 듣지 않고 열이 계속 올라가고 머리가 부서지는 것처럼 아팠다. 오늘 병원에 다녀오지 않으면 남은 일정들이 모두 엉망이 되겠다는 걱정에 동네 의원에 다녀왔다. 어렸을 때부터 다니던 병원이라 선생님의 실력을 무조건 믿고 방문한 병원이었는데 웬일로 선생님이 오진을 하신 건지 병원을 다녀왔는데도 고열과 두통이 나아지지 않았다. 선생님은 냉방병 같다고 하셨는데 냉방병이 이렇게나 아픈가 싶어서 무서워질 지경이었다. 결국 이틀 정도를 꼬박 집에서 앓고 난 뒤 지역의 큰 종합 병원으로 진료를 받으러 갔다. 그.러.나. ‘고열’이 문제였다.


뉴스에서 익히 듣던 고열로 인해 병원에서 진료를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내 얘기가 될 줄이야. 나는 병원 진료를 위해 우선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다. 사실 고열과 두통이 3일째 지속 되니 나도 괜히 걱정되기 시작하긴 했다. 혹시...? 스터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 마스크를 좀 벗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옮은 건 아닌가? 별 생각이 다 들며 걱정만 키우다가 보건소 선별 진료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6시가 다 된 시간에 받아서인지 결과가 나오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인터넷에 검사 후기를 찾아보니 24시간 안에는 나온다고 하던데 나는 하루를 훌쩍 넘기고서야 음성이라는 결과를 문자로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코로나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열이 내려가 버렸다. 남편이 응급수단으로 사다 준 타이레놀과 같은 성분의 진통제와 오렌지 주스 덕분인 것 같다. 그래서 일단 코로나가 아닌 것에는 안심을 했지만 왜 내가 고열에 시달렸던 것인지는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게 됐다.


진짜 냉방병이었던 것일까? 아무튼 머리 쪽의 질환은 끝이 난 것 같은데 오렌지주스를 너무 많이 마신 것인지 위장이 너무 아팠다. 점심 메뉴를 고르며 삶의 질이 이렇게 떨어질 수 있구나!를 실감했다. 나는 하루 한 끼는 꼭 한식을 먹어야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강제 한식에 메뉴가 한정적이라니 어쩐지 위장이 더욱 아파오는 기분이었다. 끙끙거리며 된장찌개로 맛있게 점심을 먹고 저녁 메뉴를 궁리하던 중(네... 제가 바로 먹으면서 다음 메뉴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위장이 계속 아파와 다시 검색창을 켜고 위궤양에 좋은 음식에 대해 찾기 시작했다.


어느 글에든 양배추가 빠지지 않았다. 제길... 게다가 양배추는 생으로 먹을 때 가장 큰 효과를 준다고 한다. 아픈 것 보단 생양배추 주스를 먹는 게 낫겠어! 라는 마음으로 양배추를 갈다가 냄새를 잠깐 맡아보니 아... 먹을 수 있을까? 란 고민이 들었다. 궁여지책으로 냉장고에 있던 유자청을 때려 박은 것인데 이게 웬일! 정말 먹을 만한 양배추 스무디가 만들어졌다! 위장이 약하거나 속쓰림이 있으신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지금 두 잔째 마셨더니 속쓰림이 거의 회복 되어 다시 로제 떡볶이를 먹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후식을 할 수 있겠단 의지가 생긴다. 그러나 양배추 스무디를 먹지 않아도 속이 쓰리지 않는 날까지 일단 참아보기로 한다. 아프면서 잃어버린 4일이 아까워 화가 올라오려고 했는데 지금 잘 관리하지 않으면 더욱 오랜 시간을 잃어버릴 수도 있겠음을 실감했기에. 이번엔 잃어버린 위장의 조각을 양배추 스무디로 다시 찾아내 절대 잃지 않겠다! 이글을 읽어주신 분들 모두 건강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하며…



시인 김지은

👉 소설 읽기가 취미이지만 시를 쓴다. 남편 고양이 둘과 함께 살고 있다. 왼손잡이라 과일을 깎으면 사람들이 조바심을 내지만, 과일을 먹을 수 있게 다듬어 내는 재능도 있다.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와 더불어 퐁당통신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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