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농구를 배우러 다닌다. ‘농구를 배운다’는 게, 보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농구 뒤에 ‘배운다’라는 동사가 붙는다는 게 무척 어색하긴 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농구를 배우러 온 꽤 많은 사람들을 목격하며 ‘농구를 배운다’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중이다. 당연히 배우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농구를 해본 적이 없다. 아는 언니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농구 배울 사람?’ 이라고 올린 걸 보고 현웃이 터져 웃기려 올린 거냐고 DM을 보낸 게 시작이었다. 그 언니는 진심이었고 약간 미안하기도 해서 머쓱하게 이야기를 이어 나가다가 나도 모르게 ‘어어어…’ 하다가 배우게 된 거다. 매주 금요일, 본의 아니게 밤마다 홍대를 가며 젊은이들의 ‘불금’을 마주하고 있다.

영국에서 돌아와서 자가격리 중에 가장 먼저 했던 게 근처 필라테스 할만한 곳이 있는지 알아본 거였다. 이미 20대부터 내로라하는 저질 체력에 종잇장 같은 몸을 자랑했던 나는 헬스장뿐만 아니라 여러 운동 시설에 갈 때마다 자동반사적으로 ‘이 몸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어떤 트레이너는 40대가 되면 장바구니도 들 수 없을 거라 호언장담하며 나의 미래를 점지해주기도 했다. 아무리 그게 팩트라고 한들, 그런 악담을 듣는 내 기분이 좋을 턱이 없다. 그런데 이런 말들이 비수에 꽂혀 운동의 원동력이 되어줬으니 아이러니하긴 하다.
어쨌든 한국에 있을 때도 그저 최소한의 사람 체력으로 살아내고자 하는 몸부림 수준으로 운동을 했었는데 영국 가서는 정말 단 1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한국에서는 자전거를 즐겨 타곤 했는데 영국에서는 괜히 사고 나서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지 않아 타지도 않았고, 고작 했던 거라고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나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기 위한 이소라 스트레칭이 전부였다(사실 그것도 힘들어서 반씩 끊어 하곤 했다. 일주일에 고작 하나 끝내는 거다). 운동에 대한 죄의식만 쌓아놓은 지 어언 2년, 자가격리 끝나자마자 필라테스를 끊었고, 가끔 늦잠 자느라 못 가긴 하지만 갈 때마다 내 몸이 0.01mm씩 유연해진다고 세뇌시키며 그 정도 선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본의 아니게 농구까지 하게 되어 이 비루한 몸이 이만저만 힘이 드는 게 아니다.

꼴랑 일주일에 한 번, 50분 하는데 이렇게 힘이 들 수가 없다. 이 말을 선생님과 같이 농구하는 동료들에게 했다가 비웃음 가득 섞인 웃음거리만 되긴 했는데, ‘전 궁서체입니다’라고 말할 힘도 없어 그냥 웃고 말았다. 내 딴에는 이리도 힘이 들고 정말 어쩌다가 시작한 농구라 오두방정떨면서 너무 좋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건 농구 나름의 재미를 아주 ‘쪼금’ 발견했다는 점일 거다.
생각보다 운동 컬렉터 기질이 있는 나는 꽤 많은 운동을 접해봤다. 요가부터 헬스, 클라이밍, 사이클, 필라테스 심지어 폴댄스(이건 1회 체험으로 끝났지만)까지, 돌이켜보면 그냥 시대의 흐름에 따라 꽤 핫하다는 운동을 훑어보는 천성을 지닌 듯하다. 이번엔 농구를 시작하며 나만의 운동 리그에 첫 구기 종목이 이름을 올렸다는 것에 일단 의의가 있다.
한편 다른 운동보다 무척 리드미컬하다. 그 리드미컬함은 일차적으로 사운드에서 나온다. ‘찍찍’ 운동화와 바닥간 마찰되어 나는 소리가 실내 코트라는 최적의 울림통을 통해 농구장 돌비 사운드로 변환된다. 이 소리는 속된 말로 귀에 아주 쏙 ‘때려 박는’다. 소음이라기보다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귀를 때리는 경험은 청각적으로 자극될 뿐만 아니라 뭔지 모르겠는 하이텐션의 에너지를 전해준다. 농구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공감각적인 심상(?)일 것 같다. 거기에 농구공이 내 손바닥에서 튀어 오를 때 탄성의 소리 역시 마찬가지.
단체 운동임에도 공간도 좁고 시간도 짧아서 그런지 그 안에서 펼쳐지는 동작들도 짧게 끊어져 리듬감이 필요한 운동인 것 같다. 스트레칭이나 드리블 연습할 때 선생님이 빼놓지 않고 하는 말씀 역시 리듬감이다. 그래서 박치인 나는 무척 곤욕을 치르는 게 스스로 안타까울 뿐이다(레이업 슛을 연습하는데, 레이업 포즈 그대로 공중에 뛰는 게 안 돼서 ‘오른발, 왼발, 오른발 들고 손 같이 뛰기’ 같은 나만의 주문을 만들어 주입하고 있다).
의외로 팔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걸 실제 해보면서 깨달았다. 슛을 쏠 때 힘을 줘야 할 곳은 허벅지와 복근이었다. 다리를 약간 굽혀 허벅지에 온 힘을 모은 채 허리를 꼿꼿이 펴 나비 같은 가뿐함으로 골대를 향해 슛을 쏘는 것. 이때 손은 그저 거들 뿐이다. 단, 손끝까지 단단함을 잃진 않아야 한다고 하는데, 아직 거기까지 이해하지 못한 나는 40분 동안 단 5개의 슛을 성공시킨 역사(?)를 쓰고 왔다. 맨 처음에 선생님은 내 종잇장 같은 몸을 보고 몸을 써본 적이 없기에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다독여 주셨지만 점차 내 운동신경을 보고는 더 이상 그 말씀을 하시지 않는다.
다만 얘는 답이 없다고 느끼셨는지 거의 일대일 전담 마크로 가르쳐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이렇게 나 자신이 한없이 비루해질 때마다 도대체 나는 뭐 때문에 운동을 좇아 나서나, 싶을 때가 있다. 못하는 거 안하면 되는데 굳이 찾아서 왜 나의 비루함을 다시 마주하며 그 구렁텅이에 빠뜨리는가. 늘 품고 있던 고민 중 하나였는데, 얼마 전 홍진경이 하는 유튜브 공부왕찐천재를 보다가 나도 몰랐던, 내 평생 꿈이 있었다는 걸을 깨달았다.
홍진경은 나이 마흔다섯에 이차 방정식이나 함수를 배울 필요도, 매일 영단어를 외워 시험 볼 이유가 하등 없는데 굳이 공부하겠다고 한다. 물론 공부 준비하는 거로 장장 4편의 영상이 나올 정도로 예열이 오래 걸리고 회피하려는 모습이 가득하다. 마치 운동하고 싶은데 너무 하기 싫은 내 모습과 닮아있어 웃기면서도 묘한 불편함이 늘 서려 있다. 그런데 그녀가 일을 냈다. 중간평가에서 1등을 했고 감격에 겨워 “나도 내 한계를 모르겠어!”라고 외친다.
모의고사 18점에서 1등이 되기까지, 사실 거기 나온 패널 포함 셋 중에 1등 한 거지만 18에서 1이라는 숫자의 간극은 (그녀에게만큼은) 어마어마하다. 그녀와는 반대의 의미로 나 역시 운동할 때마다 내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모르긴 마찬가지다. 도대체 내 못함의 끝은 어디까지인지 자조적으로 되묻곤 했는데, 그녀의 순진무구한 희열은 나를 타박하는 거 대신 내 잠재력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아니 이렇게 못하는 거 보면 도대체 얼마나 더 잘할 수 있는 거야? 나란 놈의 잠재력이란… 그 누구도 아닌 오로지 양열매만을 위한 운동왕이 되는 것. 내 평생의 목표이자 꿈, 바로 너였다.
에디터 양열매
👉 온오프라인 콘텐츠를 만든다. 영국에서 관련 공부를 하고 얼마 전에 돌아왔는데, 벌써 다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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