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일이 별로 없고, 딱히 목표를 세워 진행하는 일도 없다. 가끔 사람 만나고, 주로 넷플릭스와 유튜브와 왓챠와 웨이브를 보며 지낸다. 책도 조금 보고. 그렇지만 마음이 불편하거나 미래가 두렵다거나 그렇지는 않다. 이 시간을 되도록 즐겁게 지나가 보자, 정도다.

1996년 <씨네21>에 들어간 후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다. 직장을 다니지 않고 프리랜서를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여행을 길게 가도 2주 정도. 그러나 가기 전에 죽어라 일을 해서 마감을 하고, 돌아와서는 다시 두세 배 강도로 마감을 해야 가능한 휴가였다. 한 달 여행이나 휴식 같은 건 꿈도 꾸지 않았다. 2019년 11월 말에 부천영화제를 나오고, 밀린 책 원고 마감을 하느라 2월까지 아등바등했다. 2월 중순에 한국을 떠나 터키, 이집트, 잔지바르를 돌고 3월 5일에 돌아왔다. 3주의 여정이었다.
이후에는 코로나 세상이었다. 사람을 만나 뭔가 일을 도모하기에는 시절이 하수상했다. 애초에 영화제를 그만두면서, 한 1년 정도는 푹 쉬자고 생각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 생각하며 일을 벌이지도 않았다. 그동안 열심히 달려왔으니 쉬어도 괜찮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렇게 1년 정도를 보내니, 슬슬 뭔가를 해 볼까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스스로 나를 평가하기에, 열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정말이다. 뭔가에 불사를 열정이 없다. 일이 있으면 하고, 나름 즐겁게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멸사봉공 그런 류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소년만화의 열혈은 영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얼마 전, 일본 드라마 <언젠가 이 사랑을 떠올리면 분명 울어버릴 것 같아>를 봤다. 2016년 작품인데, 보면 분명 울 것 같아서 계속 미루어 왔다. 한가하게 지내다, 좀 울고 싶은 기분이 들어 보기 시작했다. 가난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어린 시절 엄마가 죽은 후 홋카이도의 나이든 부부에게 입양되었던 스기하라 오토. 고아원에서 자랐고, 농부의 아들로 입양되었다가 지금은 도쿄의 이삿짐 센터에서 일하는 소다 렌.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나고, 다시 도쿄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사랑을 이어간다. 착하고 순진하고, 그러면서도 세상을 욕할 줄 모르는 그들을 보면서 애잔했으나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들을 그저 응원하고 싶었다.
도쿄에 와서 간병인으로 일하는 오토는 꿈이 뭐냐는 말에 이렇게 답한다. “만약 꿈이 있다고 한다면 전 벌써 이뤘어요. 내 방을 갖고 싶었어요. 내 직업이 있고, 내 돈으로 그날 먹고 싶은 걸 먹고, 내 방에서 내 이불로 자고 싶었어요. 이게 계속 원하던 생활이에요.” 무능한 양아버지와 병으로 누워있는 양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어릴 때부터 일을 했던 오토의 꿈은 ‘나의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었다. 혼자 도쿄에 올라와 ‘나의 생활’이 가능했기에 오토에게 더 이상의 바람은 없다. 아니, 있지만 욕심내지 않는다. 지금에 만족하고, 가능한 만큼 타인을 도우며 함께 살아간다.
어렸을 때, 꿈이 없었다.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었다. 되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그랬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딱히 염세주의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재능도 없고, 무기력하고 한심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그렇게 믿었다. 대학도 가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그나마 3학년 5월 정도가 되어 생각을 바꿨다. 일단 대학에 들어가서 세상을 보자고 결심했다.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해서.

대학을 갔다고 갑자기 꿈이 생기지는 않았다. 뭔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눈앞에 있는 일을, 해야 하는 일을 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면서 막연히, 언젠가 하고 싶은 몇 가지가 떠올랐다. 언젠가 남국의 해변에 가서, 편한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칵테일을 마셔야지. 분주한 거리가 까마득하게 보이는 뉴욕의 고층빌딩 스카이라운지에서 야경을 보며 식사를 해야지. 아마도 영화에서 본 이미지였을 것이다. 80년대의 한국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운이 좋게도, 소박하고 유치한 나의 꿈들은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이룰 수 있었다. 푸켓에서, 발리에서, 몰디브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사라진, 맨해튼의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의 스카이라운지에서 식사를 하며 맨해튼의 야경을 보았다. 대단한 감흥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서, 그런 꿈들이 별것 아님을 알게 되었다. 별것도 아닌 꿈들을, 나는 정말 원했다. 그걸 이루어서 정말 좋았다. 그러니까 충분해. 하고 싶은 것을 해 보았어. 그런 마음이 남았다, 지금도.
젊었을 때 하고 싶었던 일들은 다 해 보았다. 그 후로도 열심히 일했고, 최소한 내가 할 일들은 도망치지 않고 했다. 그러니까 이제 좀 편해져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1년을 쉬었던 것 같다. 뭔가 이유가 있으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니까. <언젠가 이 사랑을 떠올리면 분명 울어버릴 것 같아>에서 오토의 대답을 들으며, 내일을 생각해봤다. 그 시절의 꿈들은 다 이루었으니까, 앞으로는 덤이라고 생각하자고. 뭔가에 매달리지 않아도 좋으니까 느긋하게 주변을 돌아보며 하고 싶은 일을 해 보자고. 그것이 2021년, 나의 꿈이다. 여전히 별것 아닌, 느긋하게 이루고 싶은.
문화평론가 김봉석
👉 글 쓰는 일이 좋아 기자가 되었다. [씨네21] [브뤼트] [에이코믹스] 등의 매체를 만들었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쳤다. 대중문화평론가, 작가로 활동하며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하드보일드는 나의 힘』,『내 안의 음란마귀』,『좀비사전』, 『탐정사전』, 『나도 글 좀 잘 쓰면 소원이 없겠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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