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 다 내 편이다
- 퐁당 에디터
- 2021년 1월 4일
- 2분 분량
지난 주말에는 사과를 많이 샀다. 동네에 ‘서울 농부의 시장’이 열렸는데 거기서 산 예천 사과가 아주 맛있었다. 그래서 다음 날 다시 가서 부모님 몫으로 한 바구니, 종일 이사하느라 애쓴 친구 몫으로 또 한 바구니를 샀다. 어제도 오고 오늘 또 왔다니까 사장님은 여기저기서 사과를 하나씩 골라내 덤을 얹어주고, 매대 아래로 허리를 깊이 숙여 파지까지 담아주었다.
친구의 새 집에 들러 사과를 건네고는 부모님 댁으로 내려갔다. 사과 봉지를 들고 집에 들어섰는데 현관 입구에 사과 한 봉지가 놓여있었다. 내가 내려온다는 말에 엄마가 마트에 들러 사 온 사과였다.
지난 번에 내려갔을 때 엄마랑 나는 사과를 사고 싶었다. 저수지에서 산책을 하다가 마침사과를 파는 트럭을 발견하고는 다가갔다. 한 바구니에 만 원이라길래 나는 사고 싶었는데, 엄마는 영 탐탁잖아 했다. 바구니 가득 소담스럽게 담긴 사과는 붉지 않았다. 영천 부사라는데, 맛있어 뵈지는 않았다. 어차피 당근, 비트 넣고 갈아먹을 거 맛 좀 없으면 어때? 엄마는 사과 트럭을 지나쳐 붕어빵 트럭으로 향했고 내 말은 사과 파는 아저씨가 들었으려나.
슈크림 붕어빵을 기다리는 손님 뒤에 서서 다 구워진 단팥 붕어빵이 식으면 어쩌나 조바심을 내면서 우리는 모든 것이 다 있다는 그 마트에 가기로 했다. 거기에는 붉고 달아 뵈는 사과가 있지 않겠냐며, 최소한 종류라도 다양하지 않겠냐며. 암요, 가을은 사과가 제철이고요, 없는 게 없는 그 마트에는 분명 붉고 알이 단단하고 맛 좋은 사과가 있을 거예요.
물론 그 마트에는 사과가 있었다. 다만, 비쌌고 한 봉지에 몇 알 들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만난 엄마와 나는 서로를 위해 사과를 사 들고 집으로 들어섰다.

밥은? 뭐 먹었어? 집에 먹을 건 있니?
어제 물은 걸 엄마는 오늘 또 묻는다. 20년째 한결같다. 언제나 내 입에 들어갈 먹을거리를 걱정하는 엄마는 내 편이다. 내 편의 이야기를 담아 단편 소설을 한 편 썼다. 내 친구들보다 다채로운 엄마 친구들 이야기도 얹어냈다.
나는 엄마를 몇 조각 담아냈는데 누군가는 할머니, 자매들, 혹은 자신이나 이웃을 몇 조각씩 담아 이야기를 빚었다. 그런 소설 여덟 편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한 손으로 쥘 수 있는 샛노란 책의 1/8은 내 편이다.
친구들은, 지인들은 내 소설을 읽더니 엄마에게 전화해야겠다고 했다. 엄마 이름을 불러줘야겠다고 했다. 어디까지가 우리 엄마고 어디부터가 소설인지 헷갈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서운했다고 했다. 나는 다른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자매들의 전화를 친절히 받았고,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고, 괜히 빨래방에 가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다른 일곱 편의 이야기도 모두 내 편이다. 친구 말마따나 읽노라면 ‘다정한 손길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기분’이 든다. 내 맘 헤아려주면 다 언니다. 다 내 편이다.

이면지에 인쇄한 초고를 읽고 울컥했다는 엄마는 책을 받아들고는 ‘이렇게 읽는 건 또 다르네’라고 했다. 엄마는 수정 단계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소설을 다 보았고, 나중엔 엄마 친구로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을 함께 짓기도 했다. 그러니 그 소설은 내내 엄마 것이기도 했는데, 인쇄와 제본을 거쳐 네모난 물성을 지닌 책이 된 소설은 이제 우리들의 것이다. 내 편이지만 나만의 것은 아니다. 이리 될 것을 일찌감치 알았는지, 엄마는 초고를 다 읽고 나서 선언하듯 말씀하셨다.
“이건 소설이지, 나 아니야.”
내 편인데 내 것만은 아닌 우리들의 책은 오늘 2쇄를 찍었다. 추석 연휴에 텀블벅 메인에 오르며 선전할 때만 해도 신이 났는데, 이제 조금 겁이 난다. 그래도 궁금하긴 하다. 우리의 범위가 더 넓어질 수 있을까? 나와 내 엄마, 내 편들 그리고 함께 한 다른 작가들과 그들의 내 편을 넘어 독자들까지 우리들 편으로 들어올 수 있을까? 친구가 전화로 한 시간가량 들려준 라이브 리뷰에 의하면 그럴 수 있을 것도 같다.
정말로 그러면 좋겠다.
작가 이명제 👉 에디터, 마케터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소설집 <언니 믿지?>에 작가로 참여해 단편소설을 실었다.
Comentár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