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에는 폭염이 지속되면서 정전 발생 건수가 늘었다는 기사를 뉴스에서 자주 봤다. 작년에는 비가 그치지 않고 50일 이상 내려 무서웠는데 올해는 폭염이라니 지구 멸망이 가까워지고 있는 듯해 괜히 무서웠다. 다 같이 망해버리는 것은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공룡의 멸종을 생각하면 멸망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아닌 듯해 역시 으스스하다. 자체적으로 플라스틱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분리수거가 엉망인 쓰레기장을 지날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이런 심각함과는 무관하게 나는 정전과 관련해 낭만적인 기억을 몇 개 가지고 있다.
나에게는 낭만이나 엄마에게는 걱정이었던 날이지만 나는 어렸을 때 정전이 되면 들뜨고 즐거움을 숨길 수 없었다. 서랍에 넣어뒀던 촛불들을 모두 꺼내 방안을 밝히고 후레쉬를 들고 선풍기 앞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그림을 그리고. 동생과 이불을 뒤집어쓰고 선풍기 바람을 맞으면서 수박을 먹었던 순간. 찬 데 누우면 안된다며 나를 챙기던 할머니의 다정함까지. 나에게 정전이 찾아온 밤은 일상에 소소한 특별함을 더하는 날이었다.

사실 엄마는 비디오 가게를 운영하셨는데 정전이 되는 날은 전기가 안 들어오니 아무도 비디오를 볼 수가 없었다. 장사를 공치는 날이어서 엄마에게 정전은 괴로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정전을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정전은 늘 느닷없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와 동생과 나는 평소와 같이 비디오 가게에 있었는데 비가 꽤 내렸던 기억이 난다. 비가 오는 날에는 사람들이 비디오를 많이 빌려갔기에 엄마는 은근히 매상을 기대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누가 세상의 불을 끈 것처럼, 가게 밖을 나가 살펴보니 상가 거리 전체가 어두웠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닌 상황에 나와 동생은 엄마 속도 모르고 신나했던 것이다.
엄마는 나에게 짜증을 내며 집에 가 있으라고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였던 나와 미취학생이었던 동생의 걸음으로 엄마의 비디오가게에서 집까지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왜 화를 내는지도 모르고 풀이 죽어서 집으로 갔다. 그 시절에는 할머니와 함께 살 때여서 집으로 오니 할머니가 촛불을 밝히고 계셨다. 정전은 이래서 신나지! 하며 언제 풀 죽었는지도 모르게 다시 즐거워했다.
이런 특별한 날들 중 어느 날 할머니는 어둠 속에서 봉숭아물을 들여 주셨다. 봉숭아물 들이기는 여름방학 때마다 치르는 나와 할머니만의 여름 의식이기도 했다. 할머니는 할머니만의 특별한 비법들을 많이 가지고 계셨는데 그 중의 하나가 진하면서도 오랫동안 유지되는 봉숭아물 들이기였다. 봉숭아물을 들이고 학교에 가면 그날만큼은 인싸 중의 인싸가 되어 어떻게 이렇게 예쁘게 물을 들였느냐는 질문을 잔뜩 받았다. 여기에서만 살짝 밝혀두자면 비밀은 백반과 밤새 손톱에 묶어두기에 있었다. 할머니는 꽃잎 보다 잎을 더 많이 넣으셨고 백반을 넣고 빻아 손톱에 듬뿍 올린 뒤 봉지로 싸매 주셨다. 잠버릇이 심한 편이어서 혹시나 자는 도중에 벗겨져 이불에 물을 들이지 않도록 실로 꽁꽁 묶어 주셨는데 자고 일어나면 꼭 몇 개는 없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정말 진하게 손톱에 물이 들어 몇 번은 첫 눈이 오기까지 남아 있곤 했다.
소녀들은 봉숭아물이 첫눈이 오는 날까지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맹신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겨우 초등학생 주제에 무슨 첫사랑일까 싶긴 했지만 그 시절에는 꽤나 절실했다.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이어지던 나와 할머니의 의식 속에서 첫눈이 오기까지 살아남은 봉숭아물은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러나 나의 첫사랑은 성공했을까? 한 것일까...? 이런 생각을 거치다 나는 첫사랑이 과연 무엇일까 깊은 고민에 빠지곤 한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했던 것을 첫사랑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고 처음으로 사귀자고 해서 만났던 남자친구가 첫사랑이라는 생각은 들지도 않는다. 내가 의미부여 하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 첫사랑이란 조금 큰 의미를 갖는 듯하다. 비슷한 맥락에서 나는 ‘사랑해’라는 말이 갖는 의미에도 정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었다. 특별한 말이라고 생각했었고 아끼고 아껴뒀다가 중요한 순간에만 비장의 무기처럼 이 말을 꺼내 쓰겠어! 라고 생각했었다. 과거형으로 쓰고 있는 것은 지금 신랑을 만나며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생각이 바뀌자 내가 잃어버린 순간들에 대한 아쉬움이 생겨버렸다. 도시락 안의 가장 맛있는 반찬을 마지막으로 먹으려다 이미 배가 불러 제대로 맛을 느끼지 못했던 것처럼, 사랑해라는 말을 아끼다가 정말 했어야 하는 순간을 너무 많이 놓쳐버린 것이다. 할머니에게 이 말을 좀 더 많이, 자주 했었더라면. 나는 수줍음을 많이 타는 편이라 '낯도 가리고 수줍음이 많아요'라고 하면 모두들 깜짝 놀라지만 정말로, 나는 수줍음이 많고 부끄러움도 잘 타서 뭔가 낯간지럽다는 느낌이 커서 저 말을 참 못했던 것 같다. 지금 남편과는 하루에 다섯 번도 넘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물론 결혼 전에는 한 시간에 한 번씩... 아무튼 좋은 것은 많이 자주 쓰고 나눠야지 라고 생각한다. 아끼다가 똥 만들지 말고.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도,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 많이 표현하고 자주 하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물론 여전히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동생에게는 잘 표현하지 못하지만 생일처럼 뭔가 계기가 있는 날에는 좀 더 내색해보려 한다. 내가 얼마나 당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끼고 있는지를. 정전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지만 길가에 피어있는 봉숭아꽃을 보면 할머니, 하고 부르고 싶어진다.
👉 김지은 김지은 소설 읽기가 취미이지만 시를 쓴다.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와 더불어 퐁당통신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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