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집 밖을 나가지 않은 채 식물처럼 고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 끝나면 보자’던 모임 약속은 무기한으로 연기됐고, 5G 인터넷과 음식 배달 앱 그리고 네이버 쇼핑의 조합이면, 그 어떤 아포칼립스에서도 굳건히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은 점차 강해진다. 오래 집 안에 있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작고 사랑스러운 나의 집이, 생각보다 평화로운 공간이 아니라는 거다. 벌써 여러 번 유리를 깨서 발을 찔리고, 가구에 허벅지를 찧어 멍이 들었다. 노인과 아이들처럼 실내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치는 장소를 조사하면 당당히 1위를 차지하는 곳이 바로 집이다. 집에서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이 넘어지고, 질식하고, 약물에 중독되거나 감전되는 사고를 겪는다.
집 밖은 신종 감염병, 집 안은 각종 사건사고. 역시나 ‘이불 밖은 위험한’ 게 틀림없다. 집 안에서 마냥 가만히 쉬기도 벅찬데, 요즘은 심지어 일까지 집에서 해야 한다. 집에서 일하다가 다치면 그것은 산재인가요? 아닌가요? 팬데믹 상황이 한 달이 되고, 반년이 되고, 일 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지금처럼 좁은 공간에 위축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위험은 단지 가구에 부딪히거나 바닥에 미끄러지는 것뿐만이 아닐 것이다. 팬데믹 이후 인류의 미래를 상상해본다. 지구에서 가장 평화로운 안식처인 이불 안에서….

#의자병에 걸린 A씨
전국 단위 코로나19 감염증 확산세가 심각해지면서 A씨네 회사는 전 직원 재택근무에 돌입했다. 가깝지도 않은 동네에서 한 두 명 확진자만 나와도 호들갑 떨면서 재택근무를 권했던 다른 회사들이 확진자 수가 백 단위, 천 단위를 넘어가자 은근슬쩍 ‘사내에서 마스크 필수 착용’으로 태세 전환하는 모습을 보니 마지못해 다녔던 현 직장에 대한 자부심이 차올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뭔가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 사이, 어떻게 오든 애매한 위치에 있던 사무실이 사라졌다. 대신 매일 정해진 시간에 가상의 사무실로 출근하게 됐다. 원래 일하던 사무실 구조까지 그대로 본 따놓은 기분 나쁜 메타버스였다. 하와이에 있든 제주도에 있든 어디에서든 자유롭게 일터에 접속하는 대신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의 구분은 점점 더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동료와 나눈 잡담, 잠깐 창을 넘겨 딴짓하는 시간 등 모든 데이터가 기록되었다. 회사에서는 근무 빅데이터를 활용해서 개인별 목표치를 세웠다. 성과 수준에 따라 보상이 차등 적용되니, 게임 리워드를 모으는 것처럼 온종일 일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출퇴근이 구분되지 않고, 일과 일 아닌 삶이 교묘하게 섞인 하루 대부분의 시간에는 노트북 자판을 두드렸다. 자기 전이나 잠깐 쉴 때는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았다. 출퇴근에 소요하던 기본적인 움직임마저 사라지고, 앉거나 누운 자세가 생활의 디폴트가 되었다. 도통 밖으로 나갈 일이 없었다. 얼굴은 희멀게지고, 원래 입던 옷들이 배만 꼭 맞고 팔다리는 점차 헐렁해지기 시작했다.
딱히 무슨 병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자꾸 건강이 나빠졌다. 호흡이 얕아지고, 몸의 부기가 잘 빠지지 않았다. 하루 1시간씩이라도 운동을 해보려고 억지로 홈트 영상을 틀었지만 원체 운동과 친하지 않은 터라 쉽지 않았다. 화면 속 멋진 몸매를 한 사람들은 바라볼 때 가장 빛났다. 그들을 따라 누워서 다리를 들어 올리면 90도의 채 절반도 움직이지 못했다. 물을 마시러 갈 때마다 엉덩이와 다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결국 어느 날 아침, A씨는 일어나다가 침대 위에 주저앉아버렸다. 주저앉은 채로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냉방병에 걸린 B씨 날 때부터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었던 B씨가 처음 재택근무를 시작할 무렵은 2020년이었다. 팬데믹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자발적으로 몇몇 직원들은 집에서 일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었고, B씨 역시 흔쾌히 수락했다. 집이 곧 사무실이니 월급 외에 온냉방비와 전기료, 소정의 집세를 지원해준다는 특별 정책 때문이었다. 비대면 업무에 적응하다보니 여러모로 이득이 많았다. 새 옷과 신상 화장품, 다른 사람들의 눈을 신경 쓰며 당연하게 해왔던 꾸밈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았다. 원할 때 마음대로 담배 피면서 일할 수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기화된 경기 침체 탓에 회사는 경영이 어렵다며 갑작스럽게 폐업을 선언했다. 하루아침에 직장이 없어져버린 B씨의 생활은 더 어려워졌다. 청년 실업률 10% 시대에 번듯한 새 직장에 취업하는 것은 없어진 직장을 되살리는 것보다 힘든 일이었다. 성실함을 타고난 B씨는 떠밀리듯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했다. 어쩔 수 없었지만 자유직은 생각보다 적성에 잘 맞았다. 다만 힘든 건 주거 환경, 아니 사무 환경이었다. ‘지옥고(지하실/옥탑방/고시원)’ 중 옥탑방에 살아가는 B씨는 유달리 더운 것을 힘들어했다. 역대급 폭염으로 역사에 기록될 2021년 여름을 보내면서 도무지 에어컨을 끌 수가 없었다. 소득의 대부분을 냉방비에 쓸 각오로 희망 온도 18도를 세팅했지만, 건물 꼭대기에 위치한 집은 천장과 벽면, 사방으로 뜨거운 태양 빛을 흡수하며 종일 달궈졌다. 낮이고 밤이고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아무리 에어컨을 틀어도 실내 공기는 도무지 식혀지지 않았다. 주머니에 여유가 있는 달이면 최대한 커피값이 저렴하고, 간격이 널찍한 카페에 갔다. 날씨는 더웠고, 몸은 추워졌다. 콜록콜록 기침이 나고, 오한이 들며,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 많아졌다. 약국에서 산 약을 먹으면서 버텼지만 상황은 더 심해졌다. 근육통과 발열, ‘코로나19 일 수 있다'라는 불안감이 드는 증상도 생겼다. 선별검사소에 가봤으나 결과는 음성이었다.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었고, 더위에서 벗어나는 것밖에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어느 날 땀을 뻘뻘 흘리며 잠자리에 든 B씨는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온도가 높고 습한 환경에서 번식하는 레지오넬라균이 B씨의 에어컨 냉각수에서 번식하다가 공기를 통해 폐까지 퍼져나간 것이다. 그가 발견된 것은 전세 만기일자가 도래한 2022년 여름이었다. *의자병: 앉아 있는 시간에 비해서 바깥 활동과 신체적 활동이 부족한 현대인에게 발생하는 질환들을 통칭하는 단어로 허리·목 추간판탈출증, 거북목 증후군, 손목터널증후군이 있으며, 심혈관질환,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관절염 등의 질병을 유발합니다. **냉방병 : 냉방 중인 사무실이나 집 등에서 오랜 시간 머물 때 나타나는 가벼운 감기, 두통, 근육통, 권태감, 소화불량 같은 임상 증상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냉방병 증상이 심하고 오래 지속되면 레지오넬라증을 의심해야 합니다.앉아버렸다. 주저앉은 채로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 에디터 백페이지
코뿔소랩 대표, <요가 좀 합니다> 저자, 前 에디터.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하는 다양한 운동놀이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회사에 다니다가 몸이 안 좋아져서 요가를 시작했고, 어쩌다 인도로 요가 여행을 다녀왔다. <요가 좀 합니다>라는 책을 썼지만 여전히 요가를 좀 더 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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