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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과 짬뽕의 전통

퐁당 에디터

얼마 전, 가끔 들르는 한 게시판에서 짜장면과 짬뽕의 기원에 대한 논쟁이 오가는 것을 목격했다. 어떤 이는 짬뽕은 일본의 나가사키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짜장면은 중국 산둥성(山東省)의 전통면인 자장미엔(炸醬麵)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다소 교과서적인 대답을 했고, 다른 이는 오히려 한국식 짜장면이야 말로 인천의 공화춘(共和春)에서 처음 발명되어 기원이 확실하지만 한국에서 팔리는 매운 국물의 짬뽕이야말로 나가사키의 ‘잔폰(チャンポン)’과 아무 상관없는 유래가 불분명한 음식이라고 했다. 그는 짬뽕이 ‘중국우동’이라는 기원이 불분명한 이름으로 팔리다가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짬뽕으로 변모했으며 아마도 중국에서 기원한 초마면(炒碼麵)이 변한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매우 전문적인 수준의 의견들이었지만 두 의견 다 조금씩 부정확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었다.

첫째, 짜장면은 중국의 산둥성에서 기원한 자장미엔과 맛과 조리법 재료가 완전히 다르다. 또 인천의 공화춘이 한국 최초의 중국요리 전문점이긴 했지만 공화춘에서 최초의 한국식 짜장면이 개발되거나 팔렸다는 증거가 없다. 인천에서는 공화춘의 건물이 완공된 1905년을 짜장면이 발명된 해로 정하고 2005년 짜장면 100주년을 기념하는 축제를 열기도 했지만, 정작 건물이 완공된 1905년에는 전문 요리점이 아니라 상인들에게 기본적인 숙식을 제공하는 객잔(객잔)의 형태로 운영되었으며, 1911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공화춘이라는 상호로 본격적인 요리점 영업을 시작했다.


둘째, 짬뽕은 중국 후난성(湖南省)에서 기원한 ‘차오마멘(炒碼麵)’과 조리법이 비슷하긴 하지만 들어가는 재료가 완전히 다르고, 나중에 고춧가루로 매운 국물의 맛을 내는 등 변화를 거쳐 지금은 완전히 독립적인 요리가 되긴 했지만 나가사키 짬뽕과 재료와 요리법이 비슷하다. 그리고 문화인류학자 주영하의 조사에 따르면,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세력권 안에 포함되었던 동남 아시아의 여러 나라(타이완, 말레이반도, 베트남)에서는 음식은 없을지언정 복잡하게 섞였다는 뜻으로 짬뽕과 비슷한 발음을 가진 단어들이 존재했다. 또 나가사키에서 처음 ‘잔폰’이 팔리기 시작했을 때는 중국 우동이라는 뜻의 시나우동(支那饂飩)이라는 이름이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짬뽕이 처음에 가졌던 ‘중국우동’이라는 이름이 기원이 불분명한 것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신기한 일은 나가사키에서 유래된 짬뽕만 한국에서 팔리는 것이 아니라, 중국에도 없는 한국식 짜장면이 짬뽕의 본산인 나가사키 지역에서 수십 년 전부터 팔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찌된 일일까, 사실 개항 이후 한국에 정착한 중국 출신 화교에는 두 부류가 있었다. 앞서 말한 산둥성 출신의 가난한 임노동자들이 대다수였고, 탄탄한 자금력과 동중국해와 서해에 구축한 연결망을 바탕으로 무역과 숙박, 요식업에 종사하는 후난성(湖南省), 광둥성(廣東省), 푸젠성(福建省)출신의 남방계 화교들이 소수 있었다. 이들 남방화교들은 숫자는 적었지만 막강한 자본과 조직을 바탕으로 해상무역에 활발하게 참여하여 동아시아 각국으로 진출했는데, 이들이 가진 연결망을 통해, 그들이 각기 다른 지역에서 개발한 음식들도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며 서로 교류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식 짬뽕의 형태가 지금과 같이 완성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박정희 정부의 규제로 무역업이나 상업에 종사할 수 없었던 한국 화교들이 호구지책으로 영세한 요식업에 뛰어들게 되면서 한국인들을 종업원으로 고용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독립해 나와 독자적으로 중화요리점을 운영하면서 짬뽕 같은 메뉴에도 변화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 때가 대략 70년대 초반이었으니,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짬뽕은 그 형태가 갖춰진지 불과 반세기도 채 되지 않았던 것이다. IMF이후 서민적 중화요리점들이 배달전문점으로 변화하면서 질적으로 퇴보한 것을 생각하면, 서민들이 싼 가격에 제대로 된 짬뽕을 먹을 수 있었던 기간은 30년에도 미치지 못한다.

예전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을 때 식문화 측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터키의 간편한 서민음식인 케밥 노점이 전 유럽을 뒤덮고 있었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그리스까지, 빵과 소스, 속재료가 지역마다 조금 씩 달랐지만 가히 유럽은 케밥 문화권이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될 정도로 일상적인 음식이었다. 이처럼 값싸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으면서도 식욕까지 자극하는 서민음식에는 국민국가의 국경을 초월하는 고유의 강역이 있기 마련이다. 국민국가는 구성원들을 통합하기 위해 문화적 전통을 만들어내고 강조한다. 아마도 위에서 짜장면과 짬뽕이 일본이나 중국과 상관 없는 한국의 발명품이라고 믿고 싶었던 이도 어쩌면 이러한 민족주의적 전통론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식’ 짜장면과 짬뽕의 네트워크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국경선을 신경쓰지 않는다. 그리고 오래도록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통의 환상도 개의치 않는다. 점점 날씨가 쌀쌀해져가는 요즈음, 매콤한 짬뽕국물과 자장소스를 곁들이고 계란을 섞은, 국적불명의 볶음밥을 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칼럼니스트 이노원 👉 문화, 취향, 생활에 닿아 있는 것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아 글쓰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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